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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전시라이브러리] 국내 전시회의 글로벌화, 네트워크가 브랜드를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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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시회의 글로벌화, 네트워크가 브랜드를 만든다
엑스포럼의 태국 ‘World of Coffee Asia’ 사례 분석
전시주최자의 글로벌 경쟁력, 관계 자산을 경쟁력의 한 축으로
전시산업의 글로벌화는 전시장을 해외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세계의 누구와 연결되고, 그 관계를 어떤 사업으로 확장하느냐가 진짜 경쟁력을 만든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World of Coffee Asia’는 이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세계적인 전시 브랜드의 아시아 운영을 한국 기업이 맡고, 그 무대에 국내 로스터리들이 함께 진출했다. 그 배경에는 단순한 운영 경험을 넘어 오랜 시간 쌓아 온 국제 네트워크와 신뢰가 있었다. 이제 한국 전시산업이 주목해야 할 글로벌 경쟁력은 ‘소유’만이 아니라 ‘관계’에도 있다.
국내 전시산업, 왜 이제 ‘글로벌화’인가
국내 전시산업은 지난 30여 년간 빠르게 성장했다. 전시장은 늘어났고 개최 건수도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익숙한 한계가 존재한다. 내수시장은 이미 포화에 가까워졌고 전시장 공급은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의 다양성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으며, 전시주최자의 경쟁력은 편차가 심하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품목의 전시회가 도시마다 중복으로 개최되고, 규모 경쟁이 출혈 경쟁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전시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한계를 넘어섰다. 독일의 대형 주최자들은 자국에서 키운 전시회를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최하고 있으며, Informa와 RX 같은 글로벌 전시주최자는 인수와 파트너십으로 세계 각지의 전시회를 자기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다. 이들에게 전시회는 특정 도시에서 열리는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 확장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다. 자국 시장의 포화는 위기가 아니라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할 이유가 됐다.
우리 앞에 놓인 질문도 결국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전시회의 ‘개최지’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전시회를 수출하는 나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지난 5월 태국 방콕에서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World of Coffee Asia에 무엇이 수출되었나
지난 5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방콕국제무역전시장(BITEC)에서 World of Coffee Asia가 개최됐다. 이 전시회는 세계 스페셜티 커피 업계가 모이는 대표 행사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스페셜티커피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이하 SCA)는 1982년 설립된 미국 SCA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와 1998년 설립된 유럽 SCAE(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Europe)가 2017년 통합해 출범한 세계 최대 규모의 스페셜티 커피 기구다. World of Coffee는 SCA가 운영하는 대표 행사로, 유럽과 중동에서 개최된 데 이어 아시아로 무대를 확대했다. 아시아에서는 2024년 부산을 시작으로 2025년 자카르타, 2026년 방콕에서 개최됐다.
사흘간 행사장에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로스터리와 포장업체, 바이어들이 모였다. 국내에서도 히떼 로스터리, 커피명가, 로우키를 비롯한 로스터리들이 부스를 운영했으며, 세계 컵테이스터스 챔피언십(WCTC)과 SCA 렉처시리즈, 커핑룸(Cupping Room) 등이 함께 열리면서 비즈니스와 경연, 학습이 결합된 산업 플랫폼을 형성했다.
주목할 점은 행사의 운영 구조다. 브랜드를 소유한 쪽은 SCA이지만, 아시아 행사를 실제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한국의 전시주최자 엑스포럼(Exporum)이다. 세계적인 협회 가 자사 브랜드를 내건 행사의 아시아 운영을 국내 전시주최자에게 맡긴 것이다. 곱십어야 할 지점은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전시를 개최했다’라는 사실이 아니라, 이것을 가능하게 한 기반과 과정이다.

엑스포럼은 국내 대표 커피 전시회인 ‘서울카페쇼’를 20년 넘게 운영해 온 회사다. 그동안 커피산업의 인적 네트워크와 브랜드, 유통 구조, 산업 트렌드를 한자리에 연결하며 전문성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만으로 글로벌 행사의 운영권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이 었던 것은 세계 커피산업의 핵심 기구인 SCA와 장기간 쌓아 온 신뢰 관계였다. 글로벌 브랜드의 운영권을 확보했다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브랜드를 맡길 수 있다고 평가받을 만큼 국제 네트워크 안에서 신뢰와 역량을 구축해 왔다는 점이다.
개최지 선정에서도 전략적 판단을 엿볼 수 있다. 태국은 커피 생산지인 동시에 카페 문화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소비시장이다. 생산과 소비 기반을 동시에 갖춘 시장이라는 점에서 동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의미가 크다. 부산에서 자카르타, 방콕으로 이어지는 개최지의 이동 역시 아시아 주요 커피시장을 순회하며 산업적 저변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World of Coffee Asia가 일반적인 무역전시회와 구별되는 특징은 현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전시회는 부스에서 곧바로 대규모 수주 계약이 오가는 상담회 중심의 형식이 아니며, 산업용 장비기업이 전시장을 압도하거나 물량 규모만으로 경쟁하는 자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참가업체들이 이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접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원두 향에 이끌려 부스에 방문한 참관객, 명함을 건네며 자국의 유통 환경을 이야기하는 중동 바이어, 특정 시장을 겨냥한 소포장 아이디어를 함께 스케치하는 현지 기획자 등 이곳에서의 만남은 당장의 주문보다 내일의 사업 기회를 다시 그리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바리스타 경연과 ROSTER VILLAGE(로스터 빌리지), 다양한 원두를 시음하는 커핑룸, 시장 흐름을 다루는 세미나가 한 공간에서 연계되면서 이 전시회는 거래를 넘어 업계 관계자들이 서로의 시장과 산업을 이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로스터리 빌리지에서 만난 한국 커피
행사장 서쪽(West)과 동쪽(East) 두 구역에 걸쳐 로스터리 빌리지(Roastery Village)가 조성됐다. 아시아 각지의 스페셜티 로스터리가 두 구역에 나뉘어 자리했고, 참관객은 각 구역을 이동하며 세계 각국의 원두를 비교하고 시음할 수 있었다. 이 공간 곳곳에서는 국내 로스터리 30여 곳이 부스를 운영했다. 별도의 한국 공동관에 집중 배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로스터리와 나란히 자리하며 각자의 제품과 브랜드를 아시아 시장에 선보인 셈이다.
국내 소규모 로스터리에는 이 같은 해외 전시회 참가 자체가 흔치 않은 기회다. 상당수 소규모 로스터리가 자체적으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기에는 부스비와 물류비를 비롯해 통역, 현지 대응 등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국내 전시주최자가 운영을 맡으면서 이러한 해외시장 진출 장벽을 낮췄다. 그 결과 방콕을 찾은 참관객들은 로스터리 빌리지를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의 다양한 원두를 접할 수 있었다.
부스별 반응도 다양했다. 일부 참가업체는 태국 현지 카페 체인과 첫 미팅을 진행했고, 예정에 없던 중동 유통업체 관계자와 새로운 접점을 마련한 곳도 있었다. 준비해 간 시음용 원두가 첫날 오후 소진된 부스가 있었으며 참관객이 몰려 대기 줄이 만들어진 커핑 테이블도 눈에 띄었다. 한국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아시아 시장의 관심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전시주최자 한 곳이 해외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해당 기업 만의 성과에 그치지 않는다. 그 무대에 국내 참가업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을 때 전시주최자의 글로벌화는 개별 기업의 해외 진출을 넘어 산업 전체의 판로 확대와 시장 진출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글로벌 성장의 길은 달라도, 토대는 하나다
엑스포럼의 사례는 국내 전시주최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글로벌화 전략 가운데 하나를 보여 준다. 해외 브랜드의 아시아 운영권을 확보한 뒤 국내에서 축적한 운영 역량을 글로벌 무대에서 발휘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경로에는 뚜렷한 장단점이 존재한다. 브랜드 소유권이 전시주최자에게 있지 않기에 계약 조건에 따라 지속성이 흔들릴 수 있으며, 사업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의 일부는 브랜드 소유기관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전시주최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는 길은 이 외에도 다양하다. 국내에서 성장시킨 자체 전시회를 해외에서 개최하거나, 현지 전시주최자와 합작 사업을 추진하고 지분 참 여를 통해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어느 방식이 우월하다기보다 기업의 역량과 산업의 특성, 진출 대상 시장의 여건에 따라 적합한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진출 방식에는 한 가지 공통된 토대가 있다. 바로 글로벌 네트워크다. 자체 전시회를 해외에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현지 파트너와 바이어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해외 브랜드의 운영권을 확보하려면 브랜드 소유기관과의 신뢰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현지 기업과 합작 사업을 추진할 때에도 적합한 파트너를 발굴하고 검증할 수 있는 관계망이 필요하다. 엑스포럼 사례가 보여 주는 핵심 역시 이 지점이다. 운영권 확보는 결과이며, 이를 가능하게 한 기반은 오랜 기간 축적하고 관리해 온 국제 네트워크였다.
전시 선진국이 글로벌 네트워크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전시산업협회(UFI, 이하 UFI)와 같은 글로벌 전시산업 협단체가 산업의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고, 각국 협회 및 전시주최자와 상시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친선 활동이 아니라 사업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네트워크는 눈에 보이는 자산은 아니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새로운 사업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이자 기업 경쟁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네트워크를 산업의 자산으로, 정책에 바라는 것
이 대목에서 한국전시산업진흥회(이하 진흥회)의 역할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진흥회는 이미 ‘전시회 그 자체가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상품’이라는 관점에서 국내에서 성장시킨 전시 브랜드의 해외 개최를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해 왔다. 전시회를 서비스 상품으로 보고 해외 진출과 참가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을 함께 지원한다는 점에서 국내 전시산업의 글로벌화를 선제적으로 추진해 온 정책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번 태국 사례는 ‘자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지원 틀만으로는 충분히 포괄하기 어려운 또 다른 형태의 글로벌화를 보여 준다. 브랜드는 SCA가 보유하고 있지만, 운영권을 확보하고 아시아 시장에서 실제 행사를 기획·운영하는 역량은 국내 전시주최자가 축적한 것이다. 국내 전시 산업의 해외 진출 방식이 이미 보다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지원의 시야도 ‘소유한 브랜드’에서 ‘축적한 관계와 역량’으로 넓어질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지원정책의 범위도 소유한 브랜드에서 ‘축적한 관계와 역량’까지 확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전시주최자의 UFI 등 국제 전시산업 협단체 이사·집행위원회 활동 지원, 해외 협회와의 업무협약(MOU) 및 공동사업 추진 지원, 해외 지사나 현지 법인 설립 초기 단계에 대한 지원 등을 정책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방안은 향후 정책 설계와 타당성 검토가 필요한 제안의 영역이다.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는 ‘소유의 경쟁력’과, 세계 시장의 주요 주체들과 연결되는 ‘관계의 경쟁력’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국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운영 역량을 축적하고, 그 역량이 다시 자체 전시 브랜드의 글로벌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때 한국 전시산업의 해외 진출도 일회성 성과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방콕에서 확인한 것은 단순한 커피산업의 성과만이 아니었다. 원두를 재배하지 않는 나라가 세계 커피산업의 무대를 운영하고, 그 위에 자국의 중소 참가업체들이 함께 진출할 수 있도록 한 배경에는 오랜 기간 축적한 국제 네트워크가 있었다. 한국 전시산업이 다음 단계의 글로벌화를 준비한다면이제 이러한 관계 자산을 산업 경쟁력의 한 축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확대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